계엄령이란?
국가의 비상사태가 일어났을 때, 안녕과 질서 유지를 위해 그 지역은 사법권 및 행정권의 일부 혹은 전부를 계엄 사령관이 행사할 것을 국가 원수가 선포하는 명령 (다음 어학사전 출처)
계엄령의 과정
선언: 계엄령은 정부의 최고 지도자나 군 최고 지휘관에 의해 선언됩니다. 이 선언은 특정 지역에서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존재할 때 이루어지며, 군이 민간 정부의 통제를 대신하여 행정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합니다.
군의 동원: 계엄령이 선언되면, 군대가 민간 정부의 업무를 대신하거나 보조하게 됩니다. 군사 법원과 군 경찰이 일반적인 법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게 되며, 공공의 질서가 군사적 방식으로 유지됩니다.
시민 권리 제한: 계엄령 하에서는 일반적으로 자유로운 이동, 집회, 표현의 자유 등이 제한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통행금지(야간 통행 제한), 사전 검열, 언론의 자유 제한 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민간인에 대한 군사 재판이 시행될 수 있습니다.
철회: 계엄령이 선언된 지역에서 비상사태가 종료되면, 계엄령은 철회됩니다. 정부는 다시 일반적인 법질서를 회복하고, 민간 법원이 다시 운영됩니다.
대한민국에서 계엄령이 선포된 주요 사건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각 사건은 정치적 상황과 군의 개입을 반영하며, 계엄령 선포는 대개 군사적 질서 확립과 국가의 안보를 이유로 이루어졌습니다.
1. 5.16 군사 쿠데타 (1961)
• 일시: 1961년 5월 16일
• 배경: 박정희 소장 등 군부가 주도한 군사 쿠데타로, 당시 정부는 혼란과 부패에 시달리고 있었음.
• 계엄령: 쿠데타 직후 군은 전국적으로 계엄령을 선포하고, 박정희는 군사 정권을 수립.
• 결과: 이로 인해 군부의 통치가 시작되었고, 박정희는 1963년 대통령으로 취임.
2. 10.26 사건 후 군사 정권 강화 (1972)
• 일시: 1972년 10월 26일
• 배경: 당시 대통령 박정희가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의 총격으로 사망. 이후 정치적 혼란과 사회 불안이 고조됨.
• 계엄령: 박정희의 죽음 이후 군은 전국적인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를 바탕으로 비상조치와 함께 군사적 통제를 강화.
• 결과: 박정희의 사망으로 이어진 권력 공백을 군부가 채우며, 1972년에는 유신헌법이 제정되어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
3. 5.18 광주 민주화 운동 (1980)
• 일시: 1980년 5월 18일
• 배경: 광주에서 시작된 민주화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에서 군부가 이를 진압하기 위해 군을 투입.
• 계엄령: 당시 전두환은 5.17 비상계엄을 전국으로 확대하며, 광주를 포함한 여러 지역에서 군의 강력한 진압이 이루어짐.
• 결과: 광주 민주화 운동은 많은 사상자를 낳았고, 이 사건은 이후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사건으로 자리잡음.
4. 12.12 군사 반란 (1979)
• 일시: 1979년 12월 12일
• 배경: 전두환, 노태우 등 군부의 일파가 서울에서 일으킨 군사 반란으로, 당시 전두환은 군사 쿠데타를 통해 정권을 장악.
• 계엄령: 전두환은 계엄령을 선포하고 군부의 통제를 확립, 그 후 1980년 5월 전두환은 대통령이 되었다.
3일 밤, 윤석열 대통령은 대통령실에서 긴급 대국민 담화를 열고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 이후 44년 만의 계엄령 선포이다. 이후 무장한 계엄군이 국회로 몰려오고 각 지자체의 시청과 도청이 잇따라 폐쇄되는 등 긴장된 상황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같은 상황을 긴급재난문자가 아닌 잇따른 뉴스의 긴급속보와 sns 등을 통해 알게되었다며 시민들은 긴급재난문자를 보내지 않은 행정안전부때문에 더 혼란이 가중되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또한 4일 오전 1시쯤 국회 본회의장에 모인 국회의원 190명의 계엄 해제안에 전원 찬성표가 나와 비상계엄 해제 결의안이 가결됐을때도 재난문자는 발송되지 않았다. 이에 행안부는 재난문자방송 기준 및 운영규정에 따른 기상 관련 자연재난, 대규모 사회재난, 국가비상사태, 훈련 포함 민방공 경보등을 발송해아하는데, 실무 부서에서 계엄령 선포는 재난문자 발송 요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해 발송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현재 사실관계를 확인 중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게엄령 선포로 시민들의 혼란은 물론, 금융시장에도 충격을 가했다. 1,446원까지 급등했던 원-달러 환율이 현재는 1,410원대로 내려왔고, 급변중에 있다. 또한 코스피 코스닥지수 모두 일제히 하락했다. 하락세를 멈추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금융당국은 어젯밤, 오늘 아침 두 차례 거시경제금융현안 회의, F4 회의를 열었다. 회의 후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10조원 규모의 증시안정펀드 등의 시장안전 조치가 언제든지 가동될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이며, 40조원 규모의 채권시장 안전펀드, 회사채, CP 매입 프로그램등 을 최대한으로 가동해 안정을 유지하겠다고 말했다. 또한 최상목 경제부총리도 당분간은 주식, 채권, 단기자금, 외화자금 시장이 정상화될 때까지 유동성을 무제한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시민들의 혼란과 두려움은 물론 금융시장까지 타격을 준 이번 계엄령 선포와 해제는 앞으로 한국과 더 나아가 국제적인 사회 변동 추이를 지켜봐야 할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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